[영화 리뷰] 이터널 선샤인

공드리의 역작, 이터널 선샤인

Posted by devfon on February 25, 2018

익숙함의 역설.

우리는 때로 익숙함에 권태를 느끼며 회피하고자 하지만, 희미해져 가는 그 익숙함을 그리워 한다.

익숙함은 상대의 소중함을 망각케 하지만, 사라진 익숙함은 상대의 소중함을 경각시킨다.

충동적이고 남들과는 사뭇 다른 세계관을 가진 클레멘타인과 과묵하게 내면의 세계를 굳건히 닫고 있는 조엘의 기억 저 편 이야기는 서로가 가진 익숙한 기억들의 범벅으로 묘사된다. 조엘은 클레멘타인에 대한 자신의 기억이 지워지는 과정에서 결국 자신이 원하던 것은 클레멘타인으로부터의 회피가 아닌, 그녀에게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었음을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때로는 절절하게 상기하게 된다.

이러한 상기의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은 클레멘타인이 항상 열어보고 싶어했던 조엘의 속 깊은 내면을 그가 스스로 그녀에게 공개하며 그녀와의 탈출을 시도하는 모습들이다. 상대가 항상 자신에게 아쉬워했던 부분이 결국에는 본인의 후회로 남아 자리하게 되었던 것이었을까? 결국 기억 제거의 과정에서 이를 극복하며 함께 기억을 되찾으려는 노력의 모습은 한층 더 성장한 두 사람의 관계, 그리고 익숙함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의 반영이 된다.

영화를 지배하는 절제된 사운드, 과하지 않은 SF적 요소, 그리고 조엘의 단편적 기억 조각들이 맞추어지는 과정에서 관객들이 깨우치게 되는 도입부 만남의 의미. 왜 이 영화가 지속적으로 사랑 받아왔으며, 왜 미셸 공드리라는 감독이 이터널 선샤인을 능가하는 작품을 찍어내는 데 곯머리를 썩고 있는 지 여실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서브 스토리 라인도 함께 아기자기한 정말 정말 좋은 작품.

[Quote]

Clementine: Joel? What if you stayed this time?
Joel: I walked out the door. There’s no memory left.
Clementine: Come back and make up a good-bye at least. Let’s pretend we had 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