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진짜 길었던 2020년을 되돌아 보자

지난 365일은 어땠을까?

Posted by devfon on December 31, 2020

바야흐로 회고의 계절이 밝았습니다. 올해는 세계적으로도, 제 개인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한 해 였습니다. 이미 년초에 글또 다짐글을 작성하며 상반기에 있었던 사건을 조금 기록하기는 하였지만, 동일한 내용들을 포함하여 올 한 해 전체를 되짚어 보는 글을 남겨보려고 합니다.

대학원 가자

작년부터 학부 전공을 통해 (마음속으로) 가까워진 포르투갈 대학원에 진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포르투갈에는 국가 차원에서 운영되는 Instituto Superior Técnico (IST) 라는 학교가 있는데, 쉽게 이야기해 우리나라의 -IST 와 같은 과학기술원 개념이다.

마스터 알고리즘과 트위터 내 어그로로 유명한 Pedro Domingos의 모교이기도 하고, 기계번역 중 Quality Estimation 분야 연구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Unbabel이라는 스타트업을 탄생시킨 곳이기도 하다. 특히 이곳에서 André F. T. Martins 교수의 생성 분야 연구에 당시 많은 흥미를 느껴, 포르투갈에서도 내가 원하는 학문적 발전을 충분히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석사 프로그램전산학데이터 사이언스, 두 트랙에 지원을 하게 되었고 2월 말 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코로나가 지금만큼 심각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외국으로 간다는 우려 보다는 즐거운 감정이 더 컸던 것 같다.


괌 여행 갈 사람 괌

마찬가지로 코로나가 극심해지기 이전인 2월, 괌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러나 당시에도 중국,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와 관련해 코로나 관련 뉴스가 세계로 퍼지던 시기였던터라, 코로나에 대한 우려는 어느 정도 지니고 떠났던 것 같다. 실제로 입국 심사 당시, 대구 방문 이력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었고..

괌 여행이 특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내 인생에 있어 제대로 된 첫 번째 해외여행이었기 때문이다. 20대 초반 해외봉사라는 명목으로 캄보디아 땅을 밟아본 기억은 있지만, 그 이후 해외여행 경험이 단절되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해외를 나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대학원까지 붙은 마당에 계속 이러한 두려움을 가지고 사는 것도 이상하다는 생각에 즉흥적으로 떠나게 된 괌 여행은 내가 가지고 있던 그 이상한 두려움을 없애줌과 동시에 즐거운 추억을 많이 안겨주었다. 특히 호텔 비치에서 스노쿨링을 하더라도 맑은 물에서 열대 물고기들을 볼 수 있는 광경이 굉장히 생경하면서도 좋았다. 해외여행을 떠나는게 자연스러워지는 날이 오면, 앞으로 다양한 해외 경험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


남주혁은 아니지만 스타트업

유학을 앞두고 실무 경험을 여럿 쌓고 싶어, 스타트업 인턴 경험을 꽤나 많이 했다. 올해는 교육 관련 스타트업과 법률 관련 스타트업에서 근무를 하며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ML/DL 기술을 도입하려는 초기 스타트업에서 인턴은 양방에게 모두 좋은 선택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리고 그 믿음에 걸맞게 올해 겪은 두 번의 스타트업 경험 역시 내게 긍정적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론에 대한 학습도 물론 굉장히 중요하지만, 기술이 실체로써 우리 삶에 기여를 하게 된다면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지식이 어떻게 활용되어 서비스로서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직접 고민하고, 개발을 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스타트업 인턴 경험이 내게 긍정적으로 남았던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내가 개진한 아이디어나 기여를 통해서도 몸 담았던 스타트업들에 도움이 되었길 바라..ㄴ다.


인턴보단 먼 정규직보단 가까운

예정대로라면 나는 올해 9월리스본에 도착해있어야 했다. 그런데 상황이 조금 많이 바뀌었다. 내가 당초 대학원 진학을 목표에 두었던 기저에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학업을 이어나가, 자연어 처리 분야에서도 특히 어떤 연구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를 스스로 확립하는 시기를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 별난 이력을 넘어설 수 있는 정량적 지표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즉, 연구에 대한 목표와 학위에 대한 목표가 혼재되어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3:7의 비율이 아니었을까 싶긴 하지만. 학위에 대한 목표는 그 때를 생각해보면 당연한게, 당시에는 내 이력을 살려 내가 원하는 기업들에 취업을 할 수 없을거라는 불안감을 많이 지니고 있었다.

워낙 살아온 경험이 현재 몸 담고 있는 분야와 이질적이기도 하고, 여러 변화를 주었던 이력들에 대한 부정적 피드백도 많이 받아왔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중 운영하는 페이지를 좋게 봐주던 누군가로부터 인턴 제안을 받게 되었다. 대학원 진학 이전에 작은 규모의 연구를 같이 해볼 의향이 있냐는 제안이었고, 관련 주제로 인턴 주제를 발제하고 전형을 거쳐 카카오브레인인턴으로 단기 근무를 하게 되었다.

사실 인턴을 하면서는 성취감보다 불안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스스로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너무나도 많이 하던 시기였고, 학위에 대한 불안감도 여전히 존재했다. 옆에 있는 동료들의 실력도 당시의 나에게는 불안감을 주는 요소였다. 내가 여기 있는게 맞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했었던 것 같다.

이런 종류의 불안감은 결국 내 스스로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겠지만, 주변 동료들의 긍정적 피드백도 이러한 불안감을 이겨내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점차 적응을 마쳐가던 시점에는 이곳에서 좋은 동료들과 함께 일하며, 연구적-기술적 성장을 함께 이루어 나갈 수도 있겠다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규직 전환의 기회가 주어졌고, 감사하게도 정규직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카카오브레인 소속으로 일을 한지 반 년이 지났다. 그리고 이 반 년 간 스스로 정말 많은 성장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가 많이 달라지게 되었다. 나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자존감도 많이 높아졌고, 기술적-이론적으로도 많이 성장했다.

학위에 대한 불안감과 욕심은 사실 아직 다 해소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성장을 하는 만큼 내가 원하는 연구 분야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있고, 언젠가는 해당 분야의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한 켠에 공존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현재 생활에는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

실체있는 기술을 만들고 싶다는 팀원들 간 aligned 된 믿음도 있고, 이를 위해 다방면으로 허슬을 하고 있는 현재의 팀 분위기도 너무 좋다. 배움의 욕심이 많은 나를 이해해주고, 함께 배움을 좇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도 좋은 일이고.

우연한 기회에 안착하게 된 첫 직장이지만, 적응을 잘 마친만큼 내년에는 좋은 동료들과 여러 괄목할 만한 성과를 많이 만들어내고 싶다 :)


위스키, 내 허세의 시작

취미 관점에서 올해의 가장 큰 수확은 위스키의 맛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작년부터 틈틈히 위스키 바를 방문하며, 위스키 세계에 문을 두들기다가 올해가 되어서야 비로소 위스키에 Deep-dive를 하게 되었다. 위스키 입문 시절부터 주로 버번을 즐겼지만, 최근에는 싱글 몰트의 맛을 알아가고 있다.

위스키를 공부하는데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YouTube 채널쿠씨네 Sulsultalk. 미국에 사는 부부가 여러 위스키를 소개해주는 채널인데, 남편의 위스키 지식이 상당한 수준급이다. 웬만한 위스키 관련 서적에 있는 정보보다 더 정확한 지식을 영상으로 쉽게 볼 수 있다는게 감사할 따름이다.

위스키를 알아가고 있는만큼, 친한 친구들에게도 영업을 많이 진행했다. 술술토크에서 얻은 위스키 관련 얕은 지식들을 소개하며, 위스키 잔을 맞대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재미를 느낀다. 내년에는 엔트리를 넘어, 더 다양한 위스키를 접해보며 친구들에게 내 얕은 지식을 가지고 허세를 부릴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취와 운전

학부 시절에도 자취를 했었기에, 현재의 자취가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직장을 가지고 자취를 시작하니, 학부 때와는 다른 감정이 많이 든다. 일종의 독립을 했기 때문일까? 현재 거주하고 있는 정자 원룸은 내 나름대로 인테리어까지 신경 썼을 정도로 애정이 많이 가는 것 같다.

정규직 전환 후, 몇 달 간의 월급은 거의 인테리어 소품을 사는데 소비를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현재는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어 큰 소비를 하지는 않고 있지만, 현재 집을 꾸며놓은 형태가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올해 최고의 소비는 단연코 빔 프로젝터이고 말이다. 퇴근 후, 머리가 아플 때마다 빔 프로젝터로 영화를 틀어 놓고 위스키 한 잔을 함께하면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이다. (물 온도 어떠세요?)

그리고 올해 드디어 운전을 시작했다. 형이 차를 바꾸면서 이전에 타고 있던 K3가 집에 놀고 있었는데, 이 녀석을 내가 업어와 운전을 하게 되었다. 재밌는 사실은 차를 업어온 다음 날 바로 사고를 냈다는 것… 이후 연수를 받을 때 까지는 차를 몰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고 결국 일주일 간의 연수를 받게 되었다.

연수 중 가장 많이 들은 소리는, “초보 주제에 속도감이 몸에 베어있다” 였다. 나는야 타고난 스피드 레이서. 아무튼 큰 문제 없이 연수를 잘 마무리하고서는 운전을 나름 잘 해오고 있다. 본가인 일산까지도 오갈 수 있을 정도로 중거리 운전에도 여러 경험을 하게 되었고 말이다. 아직 주차나 좁은 길 운전이 미숙하긴 하지만, 마음의 짐이었던 운전대를 잡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올해 아주 큰 수확이 있었던 것 같다.


아쉬웠던 점

아쉬웠던 것은 정규직 입사 후, 너무나도 바쁘게 지내며 페이지 운영에 소홀해진 점이다. 사실 내년에도 얼마나 잘 운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스스로에게 부족하다. 그렇다고 마냥 소홀하겠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 의식적으로 좋은 포스트를 올리기 위해 스스로를 푸시할 수 있어야 겠다는 생각은 있다.

위스키 외 별 다른 취미를 찾지도, 하지도 못했다는 것도 아쉬운 점에 속한다. 코로나 여파도 있겠지만, 내가 워낙에 활동적인 사람이 아닌지라 새로운 취미를 찾는 것에 너무나도 인색했다. 내년에는 운동이 되었건, 만들기가 되었건, 악기가 되었건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꼭 하나 찾아볼 예정이다. 집에 놀고 있는 기타가 있으니, 기타를 배워볼 수도 있겠다.

올해는 특히 지인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던 것 같다. 코로나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라, 나 스스로가 점차 사람들을 만나는데에 시간을 소요하려하지 않는 것 같다는 반성을 하는 것이다. 여러 Conversion을 거치면서, 당장 해당 분야에 자리잡기 위해 나를 몰아붙이며 점차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의 소중함을 잃어온 것 같다. 내년에는 친구들과 (온라인으로라도, 전화로라도) 더 많이 교류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2020년 정말 길었다. 여러 이벤트가 너무나도 많았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잘 나아가고 있다” 이다. 의도한 대로든, 의도하지 않았지만 운 좋게 좋은 길에 들어서게 되었든, 내 스스로가 잘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자존감이 부족했던 지난 날들을 잘 견뎌왔으니, 앞으로는 나를 더 사랑하고 주변인들을 더 사랑할 수 있는 너른 시야를 가지고 살아가야겠다 🤟